빨간 옷걸이 래름에게
빨간 옷걸이 래름에게
안녕 래림. 오늘은 너를 떠올리니 빨간 철사 옷걸이 같구나. 작품 준비하느라 많이 바쁘겠다. 네가 많이 공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나는 지금 폴 매카트니의 I don't know를 듣고 있어. 친구 프로필 뮤직인데 얘가 평소에 듣던 느낌이 아니라서 색다르네. 요즘 너는 어떻게 지내니 래림. 바쁘지만 여전히 행복하니? 네가 한국을 다시 막 떠났을 때처럼 긍정적인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랑 또 여행을 떠나고 싶어. 둘이서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네 분위기를 느낀지도 오래되었네. 다음에 한국에 오면 며칠은 우리 집에서 살아주길 바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해도 이젠 열심히 하기가 힘든데, 너를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뭘까? 래름은 무엇으로 열심히 살고 있을까? 나는 재고 따지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내가 변호사를 꿈꿨던 이유는 그 직업이 주리라 믿었던 정신적 만족감 때문이었는데, 현실을 조금 알고 나니 정신적 만족감보다는 부나 명성을 얻는 게 더 수월한 직업이란 걸 깨달았어. 물론 난 그게 필요해. 더 이상 근근이 살고 싶지 않아. 돈을 벌고 싶어. 그런데 그것이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돼주지는 못하는 거 같아. 내가 공부만 할 수 있는 집안 여건이 안 돼서 난 다시 알바를 하려고 해. 알바 하면서 공부도 하면서 연애도 잘 하고 싶어. 욕심은 많지. 그러나 그만큼의 에너지가 내게서 만들어질까 싶어. 한 가지 좋은 소식은 래림 나는 이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 평생 병원에 다닐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 방도 엄청 깨끗해졌어. 여기로 이사오고 난 후부터 애인이 내 생활습관을 고쳐줬거든. 작은 습관들을 내가 알지 못해서 못하고 있었던 거라고,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괜찮다고 그랬어. 사실 깨끗한 게 좋다는 마음에는 아직 공감이 안 돼. 적당히 더러운 것도 싫지 않아. 그치만 집이 깨끗하면 애인이 날 대단하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니까 그렇게 해. 그게 좋아. 내가 받기만 한 건 아냐. 나는 매일 애인에게 예쁘다, 멋있다고 말해줘. 그런 말들이 쌓여서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 함께하는 동안 건강해지기로 했어. 결과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니까 좋아. 지금 나는 나아가고 있어. 모든 면에서. 어쩌면 또 다른 일들이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몰라. 그래도 예전처럼 아무것도 못하진 않을 거야. 물론 완전히 괜찮지도 않아. 나는 나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나는 행복해. 행복을 지금처럼 확신했던 적이 없어. 잠시 이렇게 지내도 괜찮겠지. 나는 많이 힘들었잖아. 난 앞으로 건강한 사람이 될 거야. 그래서 언젠가 정말 멋진 모습으로 네 앞에 서고 싶어. 그때 나는 멋진 말을 하겠지. 그건 무슨 말일까. 내 평생을 함께할 래림, 나는 너에게 언제나 솔직해. 비극도 희극도 모두 얘기하고 있어. 내가 어떻게 자라가는지 봐줘. 나도 네가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게. 궁금하지 않니 우리는 죽는 날까지 어떻게 자랄까? 너는 어쩌면 내 유일한 관객일 거야.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잘 하니까. 자가격리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래림.